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시조와 가사 밑에서 박인로에게 독낙당 가사를 배워보겠습니다.
시조와 가사의 작품 주제는 독락당의 풍경과 이언적의 비에 대한 예찬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인로 독락당 가사
작사 박인로, 독락당(獨樂堂)
본문의 감상
자옥산 명승지에서 독락당이 소소애 집을 찾아간다. 오랜만이지만 이 몸은 무장으로서 공국의 해안사를 맡게 된다. 일방적인 일편단심과 분노는 버려야 한다. 금창과 철마로 한가할 때 중심을 숭배한다. 또한 기베오의 대나무, 오날사 차교니, 풍만은 위대하여 오이산이 되었고 흐르는 물은 반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희천에게 일어난 일이다. 야야야.
⇒ 자옥산(지금의 경주시내 산명) 명승지에서 독락당이 맑고 깨끗하다는 말을 오랜만에 들어보니 흔들리지 못하여 창으로 금을 몰아내고 무쇠 말, 그리고 한가할 틈 없이 바빴지만 마음속 그리움은 노인(화자 자신)에 더 깊어 오늘은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을 들고 그에게 왔다(산) , 흐르는 물 굽이쳐 흘러 희천(송나라 유학자 정이가 살던 개울)이 되었다. 어찌 이런 절경의 주인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 늙어서 가본 독락당의 절경
신라 1,000년과 고려시대에는 많은 현인과 선비가 있었고 선조들의 깃발이기도 하다. 물각유주(物各有主) 암튼 다토리 이실손. 청라를 샅샅이 파고 독낙당을 많이 내고 보니 한정된 시야는 전혀 머리가 없다.
⇒ 1,000년에 신라에, 500년에 고려에 많은 현인과 귀족들이 왔지만, 하늘과 땅이 그들을 숨겨 스승에게 맡겼다(독락당에서 은거하던 이언적을 가리킴). 만물의 주인이 있으니 다툼이 있겠느냐? 독낙당은 처음에 푸른 덩굴을 꺾어서 지어졌습니다. / 하늘이 주신 회재독독당
수천 그루의 나무와 대나무가 벽계를 둘러싸고 있고, 책으로 가득 찬 만 권의 책은 사방 벽의 네 귀퉁이가 재우였던 것 같다. 상우, 천국, 고, 그늘은 일로, 한중, 예, 잠사, 자득, 하야, 혼자 즐기기 알리는 누구? 아무리 돌권원이 사마문공을 이어받아도 진정한 사랑이다.
⇒ 녹음이 우거진 대나무 숲이 푸른 시냇물을 둘러싸고 있고, 사면에는 만 권의 책이 쌓여 있고, 왼쪽에는 안증(공자의 제자 안희와 증삼)과 유하(공자의 제자 자유와 자하)가 앉아 있다. ) 오른쪽에 앉은(이언적) 그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제자들과 공자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는 옛 친구를 사귀고 책을 읽고 시를 낭독하는 일을 했으며, 한가로움과 고요 속에서 깊은 사색을 하며 홀로 깨달음을 즐겼다. 독락, 이 이름이 뜻에 맞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마광(북송의 유명한 신)이 아무리 좋아도 진정한 쾌락이 얼마나 좋을 수 있겠습니까? / 여유롭게 책을 읽던 회재씨를 추모하며
마음을 참지 못하여 양진암도라(養眞菴)를 보여주고 임풍정간(臨風靜看)을 달리게 하여 내 뜻도 분명하게 하였다. 퇴계의 수필(退溪先生手筆)은 사실로 알려져 있다. 관어대(觀魚臺)가 내려오면 깐 것으로 보이는 바위의 장구(杖屨痕) 흔적이 보인다. 수재장 소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물색을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 진상을 알 수 없어 양진암(회재가 제자를 길렀던 집)에 돌아가서 바람을 불며 조용히 사색하니 내 뜻도 맑고 아름답다. 퇴계가 쓴 글이 사실임을 알게 하소서. 관어대에서 내려오면 바위에 회재의 지팡이와 신발의 발자국이 보인다. 손으로 직접 심은 키 큰 소나무가 고운 빛깔을 띄고 있어 옛 모습 그대로의 풍경이 더욱 반갑다. / 고대의 변하지 않는 풍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응모의 정신으로 지란실(芝蘭室)에 입성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유적지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층층이 절벽이 운모병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용면묘수로 그린 듯 버려졌다가 백척징담 천광과 구름에 채광창으로 운영되었다. 그림자가 잠기고 마치 가벼운 바람과 달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을 절친으로 삼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현물 거래를 했다. 청계에서 요기 역시 완전한 연연(宛然)이다. 제발, 백구(白鷗), 나는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1년 동안 엄자릉(嚴子陵)은 한실(漢室)에 가지 않고 모연(暮烟)만이 태심기상(苔深磯上)에 뛰어들었다.
⇒ 내 마음은 너무도 맑아서 잡초와 난초가 가득한 향기로운 방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고서들을 훑어보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층층이 절벽은 운모 병풍(운모병풍)이 있는 사찰이 되었고 ) 비가 그친 뒤에 바람이 불고 밝은 달이 부는 것처럼 빛난다(깜박임). 하늘을 나는 검은 솔개와 연못에서 노는 물고기를 벙어리 친구로 삼아 마음을 고요히 하고 성인의 일(학문을 닦고 덕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청류를 비스듬히 건너면 낚시터도 훤하다. 갈매기에게 물어봐! 당신은 오래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엄자릉(중국 전성기의 선물)이 한나라의 궁정이 된 해는? 이끼 낀 해안의 모래 위에 연기가 가라앉게 놔두세요. / 성현의 장사를 하던 회재산이 생각난다.
새 춘복을 입고 영귀대에 다가가는 여경은 고대와 현대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파랑과 빨강의 색감이 자연스럽다. 본 것 같다 한참 지나면 벽옥 같은 넓은 니페, 실키한 진주다.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을 보고도 하다마는 염계(簾溪)에 몇 년을 다녔다. 홀로 남겨진 의구청향. 자연이 스쳐간 아래쪽 폭포를 멀리 바라보니 절벽에 긴 줄이 걸린 것 같았다. 향로봉(香爐峰) 여산(廬山)은 어디인가? 징심대(澄心臺)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장(鄙吝)은 새것 같지만, 바람막이 산상만 잠겨 있고, 침묵하는 공병장(寂寞空臺)은 없다. 푸른 나무 아래. 모든 진실된 기록을 찾아 헤매던 기억이 납니다. 타경대, 연천, 구근대, 구근대, 후기홍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천차만별인 청담(淸潭)에서 헤엄칠 줄 아는 분재(紛競)다. 성장하고 있습니까?
⇒ 새봄옷을 입고 영귀대(시를 외우며 즐기는 언덕)를 오르니 풍경은 여전히 푸르고 붉다. 이슬비가 잠깐 높은 언덕 아래 연꽃 연못을 지나면 넓은 잎사귀에 푸른 구슬처럼 흩날리는 고운 구슬이다. 이런 푸르른 풍경에 볼거리가 많은데, 염계(송나라 학자 주돈이의 가명)에 가서 몇 년을 살아온 지오. 옛날의 맑은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보랏빛 안개 아래 저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절벽 끝자락에 긴 시냇물이 갇힌 것 같았다. 향로봉(산의 명봉 징심대를 내려다보니 더럽고 초라한 마음이 새것 같지만 텅 빈 벤치에 홀로 앉아 있으니 바람은 맑고 그림자만 거울 속 산은 물처럼 가라앉고 온갖 새는 푸른 나무 그늘에서 슬프게 운다. 걷다 생각하니 지나간 흔적이 다 보였다. 모자끈 씻을 물)은 예전처럼 맑지만 요 며칠 먼지가 있네요. / 당신의 무대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세상을 한탄합니다.
사자바위에 올라 도덕산을 바라보면 오곤 함희가 어제 같은데 봉거산공에서는 우리 개 두 마리만 울고 있다. 도화동 물은 불변이라 떨어지는 꽃도 흐른다 천태인가 무릉인가 선종(禪宗)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부모에게서 자랐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람이 아닌 이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마는 요산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다시 한 번 기암괴석을 뚫었다. 보랏빛 비단은 비단결이 되었고, 중화군방은 계곡바람에 흩날리며, 구름 밖에는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범희문 작가라면 누구나 그런 형식을 쓰기 쉽지 않을까? 베이 풍경은 손님들이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거목서잠(擧目西岑)에 해가 거의 지고 있다.
⇒ 사자바위에 높이 올라 도덕산을 바라보니 구슬이 쌓여 빛이 넘쳤다. ) 밤에는 두견만 운다(회재산이 없는 빈산에서 느끼는 쓸쓸한 감정을 두견에 담았다). 도화동의 물이 밤낮으로 흐르듯, 떨어진 꽃도 이 땅이 천태산(興將山. 노는 선인의 발자취가 너무 멀어서 어디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사람도 아닌데 뭔지 알지, 난 산을 좋아해, 다시 기이한 바위에 의지해 개울가를 따라 풍경을, 산사의 종소리는 구름 너머로 들려, 이 모든 것을 쓰기가 쉽지 않을까 특징 , 범희문(송작가)의 글이라 해도?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것 같다. 아래가 거의 다 보여요. / 사자바위에 올라 후지산의 풍경을 감상해 보세요.
독락당에 올라 좌우를 둘러보니 마치 풍채선생을 직접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명창정궤 예세려 성현서(성경을 중심으로 효도와 효도가 드러나고 또 효를 본받아 의를 행하고 성조에 가서 곧은 사람이 되어 당오성시를 얻기를 원하노라.” 이 깊은 산골짜기의 끝. 7년의 장례기간 동안 천일도 모르고 문을 잠그고 계율만 닦은 4명의 승려라는 여론이 저절로 일어났다. 그는 유화를 잊지 못하고 사우까지 궁궐로 데려간다( 趨仰)이다.
⇒ 다시 독락당으로 올라가서 좌우를 살폈다. 자나 깨나 그의 눈에는 다정함이 보여서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며 당시 자신이 한 일을 회고하고 다음 세대를 통해 배우고 가르치는 우리나라의 길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효와 화합을 바탕으로 의리를 다하여 궁정에 출세하여 후직과 설(순왕의 명신)의 몸이 되어 요순의 태평성대를 원하지만 행복은 불행했고 그는 멀리 있는 신과 지혜를 거부했습니다. 깊은 산 속 이 험준한 골짜기에서 누가 듣고 보며 누가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7년 동안 유배지에서 해를 보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도덕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릇된 것이 옳은 것을 이기지 못하자 여론이 높아지고 모두가 도덕을 존중할 줄 알게 되었다.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일으킨 교화를 잊지 못하고 외딴 시골에 사당(경현서원)을 지었다. / 선비들은 회재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었다.
자옥천석 위에 서원을 세웠고, 제청금을 계승한 현송성(求仁堂) 회환연쇄묘(仁廟)도 엄숙(嚴肅)한 천추혈식(千秋血食)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추성을 존경하면 할수록 덜 하고, 하면 할수록 더 성스러운 문인(文廟)과 종향(從享)이 된다. 동방오(吾東方) 문문(文獻)은 한당송(漢唐宋)에 비유되고, 자양(紫陽) 운곡(雲谷)도 여기에 있다. 덕택은 잇달아 세심대의 물에 흘러들어갔고 용추는 신물까지 잠겼고 참된 지혜를 다 찾기 어려운 때에 간절하여 선월이 빙의(淹留)하여 글을 읽었다. 이 낡은 몸속의 성경 경전집을 자세히 보니 천마디가 다 현자의 말이다. 진실로 너희가 강자리와 예가 가득한 이 가르침을 정성과 정성으로 채우고 목소리를 넓히면 말과 행동을 읽고 모든 사람이 선하게 될 것이다. 선생님, 화해의 궁극은 무엇입니까? 후손과 후손들이여, 더욱 존경을 더하여 수만년 만에 산꼭대기처럼 사라지게 하옵소서. 堂) 청풍은 가업입니다.
⇒ 자옥산의 자연경관 위에 서원을 짓고, 많은 선비들이 거문고를 치며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신사의 집 이름도 엄숙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존경하고 숭배하기를 주저하므로 문묘종향은 점점 더 성스러워진다. 한국문학은 한당송에 비유된다. 쯔양(주희가 책을 읽던 중국 안후이성 산) 운곡도 여기 있다. 대대로 물가에 내린 복이 차례대로 흐르고 신물까지 용추(용추)깊은 웅덩이에 담가 두었다가 한 달간 머문 후 스승의 선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고대 육체에 대한 마음과 영혼의 존경심을 퍼뜨리십시오. 도교의 맥과 학문의 과정은 해와 달처럼 밝으니 밝은 촛불을 들고 어두운 밤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진실로, 당신이 그 죽은 사람의 훈계로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의로운 마음과 광대한 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말은 진실되고 당신의 행동은 강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주신 교화의 끝은 어떻게 되나요? 아! 젊은이들이여, 더욱 공경하여 천년 동안 태산과 북두칠성으로 여기라. 하늘은 높고 땅은 빽빽해도 끝이 없는 것 같지만 독락당의 맑은 기운은 끝이 없는 것 같다. / 다시 독낙당으로 올라가 회재에게 조의를 표한다.
키 세트
연도 : 조선 1619년(광해군 11)
바로가기: 가사
리듬: 3.4구, 4.4구, 4음, 가사 스타일, 운문 스타일
화자의 상황: 독락당을 걷다
화자의 감정과 태도 : 축하, 감정
특징 : 시간의 흐름, 위상의 전개
주제 : 독락당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언적의 덕목을 일깨우다
이해와 감사
이 작품은 노계 박인로(1561~1642)가 회재 이언적(1491~1553)이 살던 경주 옥산의 독락당을 방문했을 때 광해왕 11세(1619)에 지은 모현가사이다. 내용은 늙은 몸으로 독락당에 가서 회재 선생을 생각하고 그곳의 유난히 아름다운 풍광을 중국의 유적지와 비교하며 노래하며 회재 선생의 가르침을 영원히 따르도록 독려하는 내용이다. 수량은 율각 2개로 총 255개이며 봉형은 주편 3․4세트, 부주물 4․4세트이다. 3~4음으로 이루어진 총 123행으로 박인로가 작사한 가사 중 가장 길다. 주제는 작가가 이언적의 유해가 있는 경주 옥산서원의 동락당을 찾아 이언적과 주변 시골에 대한 그리움을 읊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기본적으로 10개의 단락으로 나뉩니다.
첫째 문단에서는 임진왜란 때 무사로 한가롭게 취직하다가 노년에 드디어 독락당을 찾았다.
두 번째 단락에는 심지어 1,000명 사이에 있었습니다. 신라 500년과 고려 500년에 많은 성현군자.
세 번째 단락에서는 여유와 휴식에 몰두한 독랑당과 이언적의 유한한 산수를 안증과 유하를 좌우에 두는 공자에 비유하였다.
네 번째 단락에서는 양진암을 보았을 때 관어대 바위에 이룡의 글씨와 이언적의 지팡이와 신발 자국, 손으로 심은 큰 소나무가 있는 지란실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읊었다.
5단란에서는 병풍처럼 겹겹이 쌓인 절벽과 하늘과 구름이 비치고 그 속에 가라앉은 청계조기의 묘사를 통해 벼슬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자연에 다가간 이언적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저녁 안개.
여섯 번째 단락에서는 금강산에 비해 영귀대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재물을 귀하게 여겼던 증석의 옛날을 생각하였다. 탁투는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일곱 번째 문단에서 이씨는 언적의 덕맘을 외치며 사자암에서 덕덕산을 바라보며 진주를 쌓아 빛을 비추고 자신의 부재의 외로움을 노래했다. 또한 스승의 흔적을 천태산과 무릉도원에 비유하며 그들을 불사신으로 추모하면서도 해가 질 때까지 돌아갈 줄 모르는 간절한 사랑을 그렸다.
여덟 번째 문단에서는 다시 독랑당에 가서 이언적의 용모와 덕을 칭송하고 서원의 번창을 읊으며 건전한 낭독이 이어졌다. 동양의 군자였던 그는 직신으로 당우의 성시가 되려 했으나 강계 이후 운이 나빠 을사회에 유배되어 안타까워하며 선비들의 격려를 받아 사당까지 지었다고 한다. 올바른 장소에서 그가 촉발시킨 깊은 감정 때문입니다.
아홉 번째 단락에서는 구인당에 가서 쇠사슬의 엄숙함을 보고 동방의 문화를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와 비교하고, 주희가 살던 자양운곡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감탄했다. 세심대 물에는 덕택이 계속 흐르는 것 같고, 신물도 용추의 깊숙한 곳에 잠긴다고 했다. 달포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작품집을 보다가 모두 성현의 말이며 원원만큼 밝았다고 하니 마치 촛불을 들고 밤길을 걷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언적 선생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오랫동안 태산북두사처럼 숭배하고자 노력했다. 전반적으로 박인로의 가사는 성현의 통치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박인로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살던 경주 옥산의 독락당을 방문하여 지은 글이다. 노년에 독락당을 찾은 심정을 읊는 것으로 시작해 독락당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감탄과 이언적에 대한 그리움을 중국 고대 설화에 빗대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이언적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고 오래오래 따르라는 권고로 끝을 맺는다. 제시된 부분은 독낙당 주변의 풍광을 찾아다니던 이언적 회고록의 내용이다.